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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인물/2차 세계 대전

[미국]조지 스미스 패튼 주니어_2.어린시절


이번 포스팅에서는 패튼 장군의 그가 장교로 임관하기전까지의 어린 시절과 그의 가계도를 살펴봄으로써 그가 어떻게 엘리트 군인으로 성장하는지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조지 스미스 패튼 주니어(이하 패튼)는 1885년 11월 11일 캘리포니아주 산 가브리엘의 군인집안에서 태어났으며 아버지 조지 스미스 패튼 시니어, 어머니 루스 윈슨, 그리고 여동생으로 안나 윌슨 패튼이 있었다.  유년 시절 패튼은 심한 난독증을 겪었는데 이 때문인지 11살이 다되어서야 파사데나에 있는 스태판 클락의 사립학교에 입학하였다. 훗날 엄청난 독서광이 되는(주로 군사서적을 읽는것이었지만) 그에게 있어 사뭇 놀라운 어린시절이라고 할수 있다. 난독증과는 별개로 패튼은 꽤나 영리한 아이였는데 특히 한니발, 줄리우 시저, 나폴레옹 등의 활약상이 그려진 고전 전쟁사를 배우는 것을 좋아했으며 성품이 활발하여 승마를 매우 즐겼다고 한다. 또 남북전쟁의 남군 기병대 사령관이자 '회색 유령'으로 유명한 존 싱글톤 모스비가 그의 가족과 친하게 지냈기에 어린시절 부터 그의 무용담을 듣고 자랐다. 이처럼 어려서부터 그의 개인적인 성향이나 집안 배경, 주위 환경 등은 그가 군인으로 자라기에 더 없이 좋은 조건이었다고 할수 있다. 

(버지니아 군사 학교 시절의 패튼)


실제로 그는 군인 외에 다른 직업을 생각조차 하지 않는데, 그가 17살이 되던해에 그는 군사 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여러 대학을 찾기 시작한다. 패튼은 ROTC가 있는 몇몇 대학에 지원을 하고 실제 프린스턴 대학에 합격하지만 그의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모교이기도 한 버지니아 군사 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그는 1903년 부터 1904년까지 이학교에 다녔는데 난독증으로 어려움을 겪는 와중에도 군사 훈련이나 제식에 있어서 월등한 모습을 보여준다. 덕분에 캘리포니아 상원의원은 그를 웨스트 포인트 육군사관학교로 추천 지명하게 된다

(웨스트 포인트 시절의 패튼)

웨스트포인트로 적을 옮긴 패튼은 생도 생활에 빠르게 적응해 나갔지만 학업성취도는 대체로 좋지 못했다. 특히 수학에서 낙제점을 받은뒤 그는 1학년때 바로 유급을 하게 된다. 비록 그의 학업성취도는 평균 수준밖에 안됐지만 군사 훈련에 있어서는 월등한 모습을 보여 3~4학년 시절에는 간부 생도로 활동하였다. 또 체육 활동에 능해(몸으로 하는건 다잘한다) 풋볼을 즐겼는데 여러번 팔부상을 당해 경기가 중단되었다고 한다. 이에 패튼은 검 종목과 육상으로 눈을 돌리게 되는데 그가 학교 최고의 칼잡이 되고 학교 허들기록을 경신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정말 타고난 무인은 무인이다. 패튼은 1909년 6월 11일 웨스트 포인트를 전체 103명중 46등으로 졸업하였고 이와 동시에 미 육군 기병부대의 소위로 임관하게 된다.

한편, 1910년 5월 26일 보스톤 기업가인 프레드릭 에이어의 딸인 베아트리체 배닝 에이어와 결혼하여 3명의 자녀를 두었는데 이중 막내 조지 패튼 4세는 아버지의 길을 따라 군인이 되었으며 한국전쟁에 참전하기도 하였다.(소장 예편)


패튼 가족의 조상은 아일랜드, 스코틀랜드등 영국 출신으로 그의 증조모는 웨일즈 귀족 출신이었으며 그의 조상으로는 멀게는 영국왕 에드워드 1세의 아들 우드스탁의 에드먼드가 있으며 가깝게는 미국 혁명 당시 프린스턴 전투에서 전사한 휴 머서가 있다. 그의 할아버지인 조지 스미스 패튼은 남북 전쟁 초기에 제 22 버지니아 보병대를 지휘하다 윈체스터 전투에서 전사했으며 삼촌 월러 T. 패튼은 게티스버그 전투중 전사하는등 그의 조상들은 미국 역사의 획을 긋는 전투에서 군인으로써 큰 역할을 하였다. 패튼은 이러한 조상들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는데 이렇게 형성된 자존감이 훗날 그의 엘리트 의식과 안하무인의 성향을 갖게 하는데 어느정도 영향을 끼쳤다고 할수 있다. 

패튼의 아버지는 버지니아 군사학교 출신으로 로스앤젤러스 카운티의 변호사였으며 외할아버지는 로스앤젤러스의 두번째 시장을 역임한 상인 벤자민 데이비스 윌슨이였다. 이렇듯 패튼의 집안은 그가 엘리트 군인으로 성장하기에 명예와 재력을 충분히 갖추고 있었으며 훗날 패튼이 4성 장군이 되는데 큰 역할을 하게 된다.

(안나 윌슨 패튼)

한편, 그의 여동생인 안나 윌슨 패튼은 패튼의 초급장교 시절 판초 비야 원정과 1차 세계대전에서 패튼을 부관삼아 데리고 다녔던 존 J. 퍼싱장군과 1917~18 2년간 약혼을 했었는데 안나가 블리스 요새에 있던 패튼을 만나러 갔다가 퍼싱을 소개 받으면서 연인이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연인의 결말은 좋지 못했는데 퍼싱이 1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프랑스로 전출을 가게 되면서 자연스레 멀어지게된 까닭이었다. 훗날 퍼싱은 그녀를 놓친것을 굉장히 후회했다고 하며 퍼싱과 안나 윌슨 패튼 모두 여생동안 결혼을 하지 않았다.


"돈츄의 Super Save"